독서기록📚

김연수 - <이토록 평범한 미래> / 문학동네

pposooj 2026. 4. 5. 15:40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 문학동네


💭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끝없는 비관과 싸울 때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고난이 끝난 뒤에 두 번째로 불어올 바람을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희망의 방향으로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지금 당장의 상황에서는 그런 미래를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운 순간들이 더 많다. 그래도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평범한 미래’가 분명히 존재할 거라는 생각, 그 가능성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미래에는 우리가 붙잡으려 애썼던 모든 사랑이 바람으로 불어올 것이다.
 
8개의 단편 중 <진주의 결말>과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가 특히 좋았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이야기들이었고, 다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이 남는 단편들이었다.

나는 원래 단편 소설집보다는 장편소설을 좋아하는데,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지 호흡이 긴 장편보다 한 번씩 쉼표를 찍어주는 단편이 자꾸 손에 잡힌다. 한 편씩 끊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더 잘 맞는 느낌이다. 긴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짧게 멈췄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리듬이 더 편하게 느껴진다. 정말이지 지독하게 덥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 p.29)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난주의 바다 앞에서 | p.60)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진주의 결말 | p.73)

 

저는 아빠의 혼돈과 카오스를 육 년간이나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치매 증세가 심해진 마지막 일 년 동안, 아빠는 자신의 생각에 줄을 그을 줄 모르는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지 못하는 존재 였습니다. 저는 그런 아빠를 제가 만든 이야기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치매에 걸린 불쌍한 노인이라는 이야기로 말이죠. 그래놓고서 아빠를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 혼돈 속으로, 그 카오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진주의 결말 | p.87)

 

어느 시점부터인가 줄곧 나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나를 기억하게 된 일에 대해서 생각했어. 나는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는 동안에도 나를 기억한 사람에 대해서 말이야.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 p.181)

 

자신은 이제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기억의 단상 2014 | p.211)

 

"바로 그거야. 정신의 삶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지는 고독의 삶을 뜻하지. 개별성에서 멀어진 뒤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은 얼마간 서로 겹쳐져 있다는 거야. 시간적으로도 겹쳐지고, 공간적으로도 겹쳐지지.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삶이 끝나고 난 뒤에도 정신의 삶은 조금 더 지속된다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 p.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