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벵하민 라바투트 -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문학동네

pposooj 2026. 4. 10. 13:12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내가 추구하는 총체적 이해로부터 어떤 새로운 참상이 벌어질까?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매니악》을 꺼내 읽으려고 마음먹었다가, 옆에 꽂혀 있던 이 책부터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그 사이 과학 관련 책들을 몇 권 읽어둔 것이 분명 도움이 됐다. 처음 읽을 때는 등장하는 이름마다 초면이라 뉘신지?를 연발했고, 문장과 분위기에 휩쓸리며 거의 마음으로 이해하는 독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적어도 이름들이 완전히 낯설지는 않아서, 정확히 ‘딱 아는 만큼’의 아우라를 풍기며 이야기에 몰입하는 데 도움을 줬다. 물론 여전히 쉽다고는 못 하겠고, 여전히 여러 순간에서 문송합니다🥲 하는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조금은 머리도 같이 굴려가며 읽은 느낌이라 나름 뿌듯했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천재라는 존재를 범인의 머리로 헤아리기에 무리가 따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말이지 이 책에는 ‘기인 열전’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강렬한 인물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단순히 괴팍하고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만 보기에는 그들의 삶과 행보가 너무 거대하고 위험하다. 기행을 넘어선 광기의 세계를 잠깐 엿본 것만으로도 기가 조금 빨린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오늘날의 풍요와 편의를 당연하게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화려한 과학의 발전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했다. 폭력과 전쟁, 대량 학살과 파괴가 과학의 역사와 조금도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 오히려 긴밀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남았다. 그 영광 뒤에 숨겨놓은 업보를 절대 벗어날 수 없음을, 언젠가 과숙한 레몬 나무처럼 풍요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한 가지 계속 신경 쓰였던 것은, 이 ‘소설’이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허구를 섞어놓고 있다는 점이었다. 과학 개념이나 큰 흐름은 분명 흥미롭고 인상적으로 읽히지만, 과학 외적인 세부 묘사나 인물의 내면, 대화 같은 것들까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문학적 재구성인지 일반 독자인 내게는 가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실존 인물의 이름이 그대로 등장하고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강하게 몰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경계심을 놓지 않으려 애쓰게 됐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서사의 매력이 분명 있지만, 동시에 그 경계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결국 과학 개념에서 받은 자극과 감흥은 가져가되, 나머지는 너무 맹신하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두는 독서가 필요하겠다고 느꼈다. 어쩌면 깔끔하게 머리에서 휘발시켜 버리는 것이 가장 안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도.

 

 


 

“공기에서 빵을 끄집어낸 사람”이 아니었다면 현대 세계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기적적 발견의 원래 목표는 굶주린 대중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제1차세계대전에서 영국 해군에 의해 칠레산 질산염의 운송이 차단된다 하더라도 화약과 폭약을 제조할 수 있도록 원재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프러시안 블루 | 37)

 

물질이 이런 종류의 괴물을 낳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정신과도 상관관계가 있을까? 인간 의지가 충분히 집중되면, 수백만 명의 정신이 하나의 정신 공간에 압축되어 하나의 목적에 동원되면 특이점에 비길 만한 일이 벌어질까? 슈바르츠실트는 그런 일이 가능할 뿐 아니라 조국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슈바르츠실트 특이점 | 71)

 

그로텐디크는 자신의 개념들이 세상에 피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심초사했다. 내가 추구하는 총체적 이해로부터 어떤 새로운 참상이 벌어질까? 인류가 심장의 심장에 도달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게 될까? (심장의 심장 | 96~97)

 

보어가 휴가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하이젠베르크는 우리가 세상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에는 절대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자신의 개념과 슈뢰딩거의 개념을 합쳤더니 양자 물체가 고정된 정체성을 가지지 않고 가능성의 공간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었다. 전자는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여러 장소에 존재하며 하나의 속도가 아니라 여러 속도를 가진다고 하이젠베르크는 설명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214~215)

 

이전에는 모든 결과에 대해 원인이 있었지만 이젠 확률의 스펙트럼이 존재할 뿐이었다. 만물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물리학이 발견한 것은 슈뢰딩거와 아인슈타인이 꿈꾸었듯 세계의 끈을 당기는 합리적 신이 지배하는 단단하고 확고한 실재가 아니라 우연을 가지고 노는 천수 여신의 변덕에서 탄생한 놀랍고도 희한한 세상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 219)

 

밤의 정원사는 레몬나무가 어떻게 죽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 일생의 끝에 이른 나무에서는 마지막으로 무수한 레몬이 달린다. 그런 다음 열매가 한꺼번에 익고 이 초과 중량 때문에 모든 가지가 부러져 몇 주 뒤에는 썩어가는 레몬이 땅을 뒤덮는다. 죽음을 앞둔 저런 풍요는 야릇한 광경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과숙의 과시는 식물보다는 인류의 마구잡이식 파괴적 성장과 더 가까워 보인다. 내 레몬나무를 얼마나 살려두어야겠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는 베어서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밤의 정원사 | 253~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