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니스와프 렘 - <솔라리스> / 민음사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최성은 옮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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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솔라리스의 바다는 정말 F-형성물을 통해 인간을 실험했을까. 거기에 어떤 의도나 목적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 질문 자체가 이미 지나치게 인간적인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꾸만 모든 현상 뒤에 의도와 목적을 찾으려 하고, 인간이 아닌의 행동도 결국 인간의 방식으로 번역해 이해하려 든다. 그러나 솔라리스의 바다가 인간의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 어떨까. 정말로 그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 것이라면, 혹은 그것조차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의 행위가 아니라면 어떨까. 실험이라는 말조차 결국은 인간 중심적이고 지구 중심적인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도를 해석할 수 없어 더욱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인간은 왜 ‘미지’를 끝내 용납하지 못할까. 소통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어서라고 말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결국 미지에 대한 일방적인 정복욕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인간은 낯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먼저 우리와 닮은 점을 찾으려 하고, 인간의 기준과 언어로 해석하려 한다. 그러다 이해되지 않으면 두려워하고, 두려움은 곧 분노와 파괴 충동으로 이어진다. F-형성물을 ‘손님’이라고 부르는 대목에서는 정말 헛웃음이 났다. 정작 솔라리스에 먼저 찾아가 낯선 세계를 침범한 것은 인간인데, 오히려 자신들이 맞이하는 쪽인 것처럼 부르는 태도 자체가 너무 인간적이고 오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인간 일반의 문제로만 두고 읽을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를 좁히고 좁히고 또 좁혀서 결국 ‘나’의 이야기로 가져오게 된다. 나 역시 얼마나 자주 내 중심의 사고로 주변을 판단하고 있는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만 타인을 읽으려 하고, 내 감각과 경험에 맞지 않는 것을 쉽게 이상하거나 불편한 것으로 밀어내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면 솔라리스의 인간들을 마냥 비웃을 수도 없다. 그들은 과장된 형태로 드러난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솔라리스의 바다와 소통할 수 있겠어?" 그의 농담에는 뼈아픈 진실이 담겨있었다. (52)
우리는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찾으려 하지 않아. 다른 세계는 필요치 않은 거지. 우리가 원하는 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인 거야. 지구에서 포화 상태에 이르러 질식할 지경인데도 지구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우주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상화된 이미지, 지구본과 같은 모양에 지구의 문명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문명을 만나기를 기대하면서도, 실제로는 우리가 미개했던 시절의 원시적인 이미지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는 거야. (160)
솔라리스의 바다를 핵무기로 파괴해야 한다는 청원이 제기된 것은, 솔라리스 연구가 시작된 이래,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복수보다 훨씬 가혹한 방식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은 모두 파괴해야 한다는 식의 대응책이었기 때문이다. (270~271)
"자네는 기바리안이 아냐."
"오, 그래? 그럼 누구지? 자네의 꿈인가?"
"아니, 자네는 그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해. 스스로가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자네는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어떻게 알지?" (293)
우리는 자신의 평범함에 자부심을 갖고, 그것이 넓게 통용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며, 우리가 우주의 모든 것을 장악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 그래서 대담하고 유쾌하게 이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며 일종의 도식을 만들었지. 이곳은 다른 세계라고! 하지만 다른 세계라는 건 도대체 뭘까?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그들을 정복하든가 그들이 우리를 정복하든가 둘 중 하나일 텐데 말야. 우리의 보잘것 없는 두뇌는 결국 이런 수준의 생각 밖에는 못 하는 거지. (353)
어떤 의미에서 바다는 우리의 정신에서 봉인되고, 은밀히 감춰진 부분이 욕망하는 것들에 주목했을지도 모르네, 어쩌면 그것은 선물이었을지도... (419)
자네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솔라리스의 바다는 절망의 신이 뿌린 씨앗이자 영감의 기원 같은 것이 되겠군. 어쩌면 그 신의 아이처럼 유치하고 활달한 성향이 자신의 분별력을 뛰어넘었는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우리의 솔라리스학 도서실을 가득 채운 자료들은 그저 젖먹이의 반사 작용을 기록한 방대한 목록에 지나지 않겠군... (434)
나는 완전히 압도당한 상태로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면서, 도저히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관성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점점 몰입을 거듭하면서 나는 이 보이지 않는 유동적인 거인과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별다른 노력 없이, 아무런 말이나 생각도 없이 나는 그가 저지른 모든 것을 용서했다. (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