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신형철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한겨레출판

pposooj 2026. 4. 6. 16:07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 한겨레출판


💭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 타인의 피 흘리는 고통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프고 괴롭다는 말처럼 나의 작은 고통을 쓰다듬느라 타인의 고통은 모른 척하곤 했다.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그런 내가 부끄럽다. 내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슬퍼하면서 끝내 닿을 수 없을 타인의 슬픔에 닿기 위한 슬픈 공부를 해야 할 때다.
완전히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다가가려는 시도를 계속하자. 세상엔 닿아야 할 슬픔이 너무 많이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책과 추천한 책을 다 읽어 보는 게 목표였던 적이 있는데, 다시 읽으면서 보니 반의반도 읽지 못한 것 같다😅
그때도 나름 열심히 읽으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보니 생각보다 많이 읽지 못했다는 게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읽으면서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 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침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p.28)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어떤 인터넷 뉴스의 댓글에, 트위터에, 각종 소문 속에 그들은 있다.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p.93)

 

로버트 펜 워런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1962) 라는 글에서 이런 대답을 했다. ”소설은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주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소설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지조차 몰랐던 것들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p.173)

 

인간은 무엇에서건 배운다. 그러니 문학을 통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서 가장 결정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로부터 가장 처절하게 배운다. 그때 우리는 겨우 변한다. 인간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만 가까스로 바뀌는 존재이므로 나를 진정으로 바꾸는 것은 내가 이미 행한 시행착오들뿐이다. 간접 체험으로서의 문학은 다만 나의 실패와 오류와 과오가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할 것이다. (p.176)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성과 그를 외면하지 못하는 결벽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다. 타인에게 열려 있는 통각이 마비돼 있거나 미발달된 이들이 하는 정치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