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 <여자아이 기억> / 레모

여자아이 기억
아니 에르노 (백수린 옮김) / 레모
💭
그건 여전히 쓰지 못한 책이다. 언제나 뒤로 미뤄진,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구멍.
아무것도 윤색하지 말기. 그는 자신의 원칙을 끝까지 굳건히 지킨다. 철저하게 2014년의 ‘나’가 되어, 잊고 싶었으나 끝내 잊지 못한 1958년의 여름 캠프에 갇혀버린 ‘그녀’를 글쓰기로 잔혹할 정도로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것은 과거의 자신을 감싸거나 변호하지 않는 태도다. 보통 회고는 어느 정도의 연민이나 정당화를 동반하기 마련인데, 아니 에르노는 그런 익숙한 보호막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타자의 시선으로 ‘그녀’가 겪은 수치스럽고 어리석었던 경험을 다시 바라보고, 그 시절의 무지와 욕망과 굴욕을 냉정하게 직면한다. 그렇게 끝까지 밀고 나간 뒤에야 작가는 비로소 ‘1958년 여자아이’를 구출하고, 50년 만에 여름 캠프에서 완전히 떠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라기보다,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다시 인식하고 끝내 자기 것으로 회수해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글쓰기를 통한 주체성 회복의 과정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하다못해 일기를 쓸 때도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미화하고 감추기 마련인데,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거북할 정도로 솔직하다. 솔직하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가차 없고, 어떤 대목에서는 읽는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로 숨김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바로 그 거북스러움 때문에 이 책이 더 강하게 남는다. 모순되게도 그 불편함 속에서 통쾌함과 자유로움을 함께 느낀다. 감추지 않고, 자신을 미화하지 않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취향과 완전히 맞는다고는 할 수 없는데도 굳이 아니 에르노를 계속 찾아 읽게 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위가 선한 것이었는지 악한 것이었는지, 자긍심을 느껴야 할지 수치심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3)
언제나 일기 속 문장들엔 ’S의 여자아이‘나 ’1958년 여자아이‘에 대한 암시들이 있었다. 20년 동안, 나는 책을 쓰려는 내 계획 속에 ’58‘이라는 숫자를 적는다. 그건 여전히 쓰지 못한 책이다. 언제나 뒤로 미뤄진, 차마 형언할 수 없는 구멍. (16)
나는 2014년의 여자와 1958년의 여자아이를 하나의 ‘나‘로 녹여내야만 하는 걸까? 아니, 내게, 가장 적합한 게 아니라 ⎯ 주관적인 평가다 ⎯ 가장 대담하다고 느껴지는 방식은 이 둘을 ’나‘와 ’그녀‘라는 대명사로 분리하는 것이다. 있었던 사실과 행동들을 가능한 한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잔인하게, 마치 문 뒤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그녀’나 ‘그’라고 지칭하며 수군대는 걸 듣는 방식으로. 그걸 듣는 순간 우리가 죽고 싶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24)
글을 써나갈수록, 내 기억 속 이야기가 지금까지 지녀온 단순함이 사라진다. 1958년의 끝까지 가는 것, 그것은 수년에 걸쳐 내가 축적해온 여러 해석들을 산산조각 내겠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것도 윤색하지 말기. 나는 허구의 인물을 축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였던 그 여자아이를 해체하는 것이다. (74)
이번에 ⎯ 2015년 4월 28일 ⎯ 나는 방학 캠프를 확실히 떠난다. 글쓰기를 통해 되돌아가, 여러 달 동안 그곳에 머물기 전에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 나는 마침내 1958년 여자아이를 구출해냈고, 우리가 바로 여름의 아이들이지라고 노래 부르는 아이들로 가득했던, 오른 강가의 웅장하고 오래된 건물에 50년간 그녀를 가둬두었던 주술을 깨뜨린 것 같다. 나는 말할 수 있다. 그녀는 나고, 내가 바로 그녀라고. (108~109)
우리는 다른 이들의 존재 속에, 그들의 기억 속에,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심지어 행동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가? 이 남자와 보낸 두 밤이 내 인생에 영향을 미쳤음에도 나는 그의 인생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는, 이 믿기 힘들 만큼 놀라운 불균형.
나는 그가 부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건 나니까. (131)
캠프에서의 밤 이래 일어난 모든 일들이, 추락에서 추락으로 이어져, 이 최초의 글쓰기로 귀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것은 글쓰기라는 안식처에 다다르기까지의 위태로운 횡단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결국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난 일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라는 깨달음을 증명하는 이야기. (202)
어떤 일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지닌 무시무시한 현실성과 몇 년이 흐른 후 그 벌어진 일이 띠게 될 기묘한 비현실성 사이의 심연을 탐색할 것.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