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존 버거- <결혼식 가는 길> / 열화당
pposooj
2026. 4. 6. 16:15

결혼식 가는 길
존 버거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한 여인과 결혼하는 거야. 고철이 곧 쓰레기는 아니다, 지노.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시간을 낭비한다. 미워하고, 비난하고, 상처 주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고소해하기도 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매여 정작 현재를 돌보지 못한다. 언제든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니농은 갑작스레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었지만, 비관의 단계에서 머무르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 지노와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죽음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결혼식 가는 길》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시점이 계속 바뀌고, 현재와 과거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아 처음엔 갈피를 잡는 데 애를 먹었다. 그러나 모든 시점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나서는 나 역시 니농과 지노에게 초대받은 하객이 된 듯 장 또는 즈데나와 합류하여 결혼식이 열리는 베네치아로 향했다.
베네치아로 향하는 니농의 엄마인 즈데나와 아빠인 장의 여정은 한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표현되는데, 이 시선의 주인공이 그리스에서 타마를 파는 맹인이라는 사실이 재미있다.

찌르레기 울음 소리는 건조하다. 지빠귀는 살아남은 이들처럼 노래한다. 헤엄을 쳐서 물을 건너고, 안전한 밤의 이쪽 편에 도달한 이, 그런 다음 나무 위로 날아올라 등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며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이처럼. (41)
저 자신을 선물로 내주는 일이 사라져 버린 거예요. 저를 주는 건, 죽음을 주는 것이니까. 언제나, 제가 죽는 날까지요. 길을 걷다 보면 젊은 남자들이 저를 쳐다봅니다. 그러는 내내 저는 제가 곧 죽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곤 하죠. (…) 콘돔을 쓰면 괜찮다고들 하죠. 콘돔을 쓰면 그와 그의 죽음 사이에 고무가 끼어드는 거에요. 그와 저 사이에도 고무가 끼어들고요. 고무의 외로움. 끝없이 영원한 고무의 외로움. 이젠 그 어떤 것에도 닿을 수 없어요. (80~81)
옛날 사람들은 금속이 땅 밑에서 만들어지는 거라고 믿었다. 모든 금속이 말이야. 수은과 황이 섞이면서 만들어진다고 했지. 콘돔 쓰고, 지노, 그 아가씨랑 결혼해라. 너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한 여인과 결혼하는 거야. 고철이 곧 쓰레기는 아니다, 지노. 그 아가씨랑 결혼해. (100)
피아데나 같은 작은 도시, 도심의 건물들이 아무것도 가리지 못하는 이 평원의 작은 도시에서, 젊은이들은 인생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런 순간들은 아주 빠르게 왔다 가 버린다. 그 후에는, 아무것도 이전과 같지 않고, 그들은 또다시 기다린다. 이곳에서 시간은 종종 일 분도 안 되는 시합을 위해 몇 달 혹은 몇 년을 준비하는 운동선수의 시간과 비슷하다. (109)
시간이 진동이 될 때, 음악이 그렇게 만들 때, 영원은 진동들 사이의 침묵 안에 담긴다. (196)
심장이 새겨진 타마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신호수가 ”전부 다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다. (혹은 알았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타마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양철이 아니라 목소리들로 만든 타마. 그 타마가 여기 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이 타마를 촛불 옆에 두시기를…(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