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 을유 문화사

pposooj 2026. 4. 15. 15:55


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민승남 옮김) / 을유 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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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삶에서 너무 많은 즐거움을 누리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덜 살았다. 생명이 영영 고갈되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살았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마지막 작품 《별의 시간》을 읽었다. 마지막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어서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이 지닌 기묘한 밀도와 떨림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짧은 소설인데도 쉽게 지나가지지 않았고, 이야기 그 자체보다 이야기를 둘러싼 목소리와 감각이 오래 남았다.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어떻게 말하는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소설이 있는데,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

 

삶에서 즐거움을 너무 많이 느끼게 되면 큰 벌을 받거나 죽게 될까 봐, 그마저도 고갈되지 않도록 조금씩 아껴 살았던 마카베아. 그녀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없고 목적조차 없었기에 소소하고 그럭저럭 행복한 인생을 산다. 그것이 정말 행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망설여지면서도,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마카베아가 자신의 불행한 삶을 인지한 것은 점쟁이가 그녀의 불행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어떤 불행은 실제로 겪는 순간보다도, 그것이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해석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점쟁이가 그녀의 앞날에 펼쳐질 행복을 점쳤을 때, 마카베아는 처음으로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희망과 욕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죽음을 마주한다.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별이 되고, 수명을 다한 뒤 폭발하여 다시 우주의 모든 것으로 되돌아간다. 우리는 모두 별의 흔적을 품고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는 이 이야기에서 별을 기대하지 말라 일렀지만, 나는 마카베아의 인생이 별과 같다고 생각했다. 빛나는 별이라는 뜻은 아니다. 별은 실제로는 우리가 상상하는 낭만적인 반짝임과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스스로 빛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마카베아는 별처럼 우연히 세상에 나왔고, 거기에 커다란 의미는 없다. 그녀 자신도 그것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그녀는 초신성처럼 강렬하고 화려하게 폭발했고, 별처럼 모든 것으로 되돌아갔다.

 

 

 

 


 

 

생각은 행위다. 느낌은 사실이다. 이 둘을 합치면 내가 된다. 내가 쓰고 있는 것을 쓰고 있는 사람. 신은 세상이다. 진실은 언제나 내적이며 설명할 수 없는 접촉이다. 나의 가장 진실한 삶은 알아차릴 수 없고, 지극히 내적이며, 어떤 말로도 정의할 수 없다. 내 가슴은 모든 욕망을 비운 채 그 자신의 최후 혹은 태초의 고동으로 축소되었다. 이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치통은 내 입 안에 날카로운 고통을 남기고 있고, 그렇게 나는 귀에 거슬리는 고음으로 당김음 선율을 노래한다-나 자신의 고통을. 나는 세상을 짊어지고 있으며 그 일에는 어떠한 행복도 없다. 행복? 나는 그보다 멍청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건 저 북동부 여자들이 지어낸 말이다. (18)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서술이 아니며, 무엇보다도 숨을 쉬는, 숨을 쉬는, 숨을 쉬는, 가장 근원적인 형태의 삶이다. 언젠가 나는 여기서, 구멍이 숭숭 뚫린 내용 속에서, 폭발 가능한 원자들을 지닌 분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21)

 

만일 그녀가 스스로에게 ’나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만큼 멍청하다면 무참히 고꾸라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누구일까?‘는 하나의 욕구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겠는가? 의 구심에 잠기는 자들은 불완전하다. (25)

 

사실이란 곧 행위일까? 맹세컨대 이 책은 말들 없이 만들어진다. 이 책은 음소거된 사진이다. 이 책은 하나의 침묵이다. 이 책은 하나의 질문이다. (27)

 

그녀는 삶에서 너무 많은 즐거움을 누리면 무서운 형벌을 받게 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음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덜 살았다. 생명이 영영 고갈되지 않도록 아주 조금씩 살았다. (53)

 

나는 왜 쓰는가? 나는 무엇을 아는가? 모르겠다. 그래, 사실이다. 가끔 나는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마치 내가 머나먼 은하계에 속한 존재인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나 자신이 너무 낯설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을 마주하기가 두렵다. (61)

 

그녀는 이제껏 느껴본 그 어떤 절망보다 더 격렬한 희망에 차 있었다. 그녀가 이제 더 이상 그녀 자신이 아니게 된다면, 그건 이득이 되는 상실이었다. 그녀는 사형 선고를 받듯 점쟁이로부터 삶의 선고를 받았다. 갑자기 모든게 너무너무 많고 커서 그녀는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죽어 가는 태양처럼 빛났다. (136)

 

그녀는 길가에 맥없이 널브러진 채, 어쩌면 그 모든 감정들에서 벗어나 잠시 쉬면서, 하수구 근처 돌 틈 에서 자라는 풀들을 보았다. 여리디 여린 인간의 희망을 닮은 초록의 풀들. 오늘은 내 인생의 첫날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난 새로 태어났어.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