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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우다영 -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 문학과지성사

by pposooj 2026. 4. 5.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 문학과지성사


💭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매 순간 완전해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작은 빛처럼, 가만가만하고 고요하게 결국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소설집이었다. 조용한 문장들에 담긴 울림이 생각보다 깊고 묵직했다. SF라는 장르적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결국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다.
워낙 SF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이야기들에 더 끌리는 편이다. 이 작품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책장 넘기는 걸 잊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도서관에 갔다가 흥미로운 제목에 이끌려 선택하게 되었는데, 취향에 딱 맞는 작품을 만나 행복해졌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에 수록된 다섯 개의 단편 중,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긴 예지'를 인상 깊게 읽었다. 이야기마다 다른 SF적 상상 속에, 우리는 불완전하고, 실수하고, 상처받고,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는 다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요즘 들어 나도 모르게 존재론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들을 읽게 된다.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내 내면의 필요에 의해 그런 이야기들을 찾고 있는 건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질문과 마주하는 시간들이 참 따뜻하고 의미 있게 느껴진다.
 
 


 

내 안의 돌담이 무너진 건 그 애가 내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애가 실수를 저지르고 후회를 하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경솔한 선택들을 했을지, 또 얼마나 후회하고 그러면서도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했을지 내가 그것을 상상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 애를 연민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 p.33)

 

분명한 사실은 이것뿐이었다. 우리가 더없이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존재라는 것.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는 방식으로 매 순간 완전해지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 p.56)

 

”인연을 반복하기 위해 생이 존재하는 것 같아. “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 p.93)

 

”어쩐지 하나가 된 영혼의 끝에 시간도 공간도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다 사라진 대도 괜찮을 것 같아. 무섭지 않을 것 같아. “  ”왜? “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첫 번째 영혼이 분리될 테니까. 아주 작은 차이로 틀어진 나와 네가 생기면 다시 세상이 시작될 테니까. 다시 시간이 흐르고 세계가 존재하고 나는 너를 궁금해하고.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반복하기 위한 반복을 시작할 테니까. 아마도 태초에 영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 p.113)

 

효주는 2만 번의 삶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을 마침내 자신의 깊은 속에서 찾았다. 신의 잉태를 목도하자, 효주는 어째서 세상이 기필코 종말을 향해 가는지 이해했다. 종말의 다른 이름은 신의 완성. 신은 창세기에 나지 않고 세계 전반에 흐르는 암시로 존재하며 종말에 비로소 도래하는 것이다. 세계는 단지 신이 완성되면 끝나도록 프로그래밍된 신의 알이며, 우주 만물의 원리는 때가 되면 알을 깨고 나오는 신의 본능이었다. (긴 예지 | p.200)

 

신은 이로써 또 하나의 시선을 더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신을 돌보고 신은 인간으로부터 자애를 터득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 신이 깃들었다는 말은 잘못된 해석이었다. 신에게 세상의 모든 것이 깃들었다. (긴 예지 | p.207)

 

나는 소멸을 직감하며 마지막으로 신과 소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소년은 기도의 의미를 모른 채 기도를 완성했다. 신은 기도를 목도했다. 이로써 땅에 석양이 내리고 하늘에 종소리가 닿으면, 목마른 사람들은 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 | p.255)

 

이 편지가 전해진다면 저는 이미 당신이 선물해 준 매기의 삶을 떠난 뒤겠지요. 하지만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저는 언제나 영사되는 영화의 빛으로 가득한 매기를 벗어나 어두운 요람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찬란한 빛이 꽃을 드러내듯, 온전한 어둠만이 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