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용경식 옮김) / 까치
💭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표지부터 압도적이다. 지금은 새로 디자인된 커버로 양장판이 나와있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이 버전의 표지를 좋아한다. 물론 과감한(?) 스포일러와 띠지에나 있어야 할 것 같은 홍보문구들은 지금 봐도 아찔하지만, 에곤 실레의 그림과 책의 날 것 같은 분위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래서 진실에 더 가까워보이는 이미지.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표지가 왜 책과 더 잘 어울리는지 알게 된다. 눈을 돌리고 싶어도 결국 마주하게되는 불편한 진실들. 그런 면에서 새로운 양장본이 아무리 예뻐도 나는 이 구판 표지가 이 책에 더 잘어울리는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 새로운 양장본이 너무 아름다운 탓에 잠자는 소비욕이 자꾸만 자극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행위, 대화 그 자체만을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바로 그 문체 덕분에 인물이 처한 상황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충격이 읽고 있는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감정을 절제함으로써 오히려 고통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아이러니.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와중, 어느순간부터는 ‘진실 찾기’를 멈추고 그 혼란스러움에 자연스레 뇌를 맡기기로 했다. 이 혼란함 자체가 이 작품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진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쩌면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서 다른 존재와의 연결은 필연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간은 혼자서는 온전히 존재할 수 없고,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와의 관계, 그리고 누군가의 기억속에서 비로소 자기를 인식하게 되는 건 아닐까? 루카스가 노트를 쓴 것도, 마티아스를 포기하지 못한 것도, 클라우스에게 존재를 부정당한 후 죽음을 결심한것도 그런 맥락이라 생각했다.

거름, 물고기, 풀, 버섯, 연기, 우유, 치즈, 진흙, 개흙, 흙 , 땀, 오줌, 곰팡이의 냄새가 뒤섞인 것이 바로 우리의 냄새이다. 그것은 할머니의 냄새와도 같다. (비밀 노트, p.21)
“귀여운 것들! 내 사랑! 난 너희를 사랑해……난 영원히 너희를 떠나지 않을 거야……난 너희만 사랑할 거야…… 영원히……너희는 내 인생의 전부야……“ 반복하다보니, 이런 말들도 차츰 그 의미를 잃고 그 말들이 주던 고통도 줄어들었다. (비밀 노트, p.27)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비밀 노트, p.35)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타인의 증거, p.302)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용기도 없는 나 자신이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도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내가 말했다. ”그렇죠, 책이야 아무리 슬프다고 해도, 인생만큼 슬플 수는 없지요.“ (50년간의 고독, p.394)
“생각에 깊이 빠지기 시작하면, 인생을 사랑할 수 없어.” (50년간의 고독, p.403)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50년간의 고독,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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