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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조앤 디디온 - <상실> / 책읽는수요일

by pposooj 2026. 4. 6.


상실

조앤 디디온 (홍한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비애는 파도 처럼, 발작처럼 닥쳐오고 급작스러운 불안을 일으켜, 무릎에 힘을 빼고 눈앞을 보이지 않게 하며, 일상을 까맣게 지워버린다.

 

 

《상실》은 남편 존 그레고리 던과의 갑작스러운 사별 후 1년간의 이야기를 기록한 조앤 디디온의 대표작이다. 원제는 마술적 사고의 해(The Year of Magical Thinking)로, 남편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것을 되돌릴 수 있으리라는 비현실적인 믿음, 그러니까 ‘마술적 사고’에 사로잡혀 보낸 시간을 뜻한다. 이 책은 상실 이후의 시간을 정리된 애도의 언어로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무너진 감각과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을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죽음은 물론 두렵다. 하지만 나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이다. 그런 일이 떠오르는 것조차 외면하고 싶을 만큼 두렵다. ‘파도처럼, 발작처럼’ 닥쳐오는 비애를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내가 사라지는 일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남아서 그 부재를 견뎌야 하는 일이 더 두렵다. 순서를 정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제일 앞서는 건 나였으면 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남겨지는 사람의 슬픔을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득해진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하는 짐작이 정말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의 슬픔의 깊이를 공감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어떤 상실은 비슷한 말로도, 익숙한 위로로도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다만 그 모든 비애의 순간과 망자에 대한 기억, 그리고 비로소 애도로 가는 과정을 그저 읽을 뿐이다. 읽는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말과는 다르지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오래 읽게 되는 책도 있는 것 같다. 이 책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삶은 빠르게 변한다. 삶은 순간에 변한다. 저녁을 먹으러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알던 삶이 끝난다. 자기 연민이라는 문제. (9)

 

비애는 다르다. 비애는 거리가 없다. 비애는 파도 처럼, 발작처럼 닥쳐오고 급작스러운 불안을 일으켜, 무릎에 힘을 빼고 눈앞을 보이지 않게 하며, 일상을 까맣게 지워버린다. (40)

 

나는 문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그의 구두들을 남에게 줘버릴 수 없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왜 그럴 수 없는지 깨달았다. 존이 돌아오면, 구두가 필요할 테니까. (50)

 

비애는 수동적이었다. 비애는 저절로 생겨 났다. 그러나 비애를 다루는 행위인 애도는 주의를 집중해야 할 수 있었다. (192)

 

사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자신을 가엾게 여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이유가, 심지어 절박한 욕구가 있다. (256)

 

사실은 오늘 렉싱턴 애비뉴를 건널 때, 우리가 함께 보낸 삶이 내 일상의 중심에서 점점 밀려 나가리라는 예감이 너무나 강력한 배신처럼 느껴져서, 나는 다가오는 차의 존재조차 잊고 말았다.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