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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이언 매큐언 - <나 같은 기계들> / 문학동네

by pposooj 2026. 4. 27.


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우리 앞에 궁극의 장난감, 모든 시대의 꿈, 인본주의의 승리 ⎯ 혹은 그 죽음의 천사 ⎯ 가 앉아 있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우리가 '인간적'이라 부르는 것. 그것은 불완전성이 아닐까? 인간의 욕망과 오만으로부터 창조된 '인간보다 완전한' 존재인 인조인간의 탄생은 우리를 더욱 특별하게 할까? 아니면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까?

 

사실 살짝 식상해진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뻔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 것은 역시 이언 매큐언의 힘일 것이다. 현실과 약간 다른 역사를 가진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이언 매큐언의 단골 소제인 ‘도덕적 딜레마’를 인조인간의 범위까지 확장한다. 오직 합리와 진실만을 추구하는 인조인간 아담과 이익에 따라서 거짓을 말하기도 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상황을 합리화하기도 하는 보통 인간(오히려 선량한 편인) 찰리와 미란다.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본다면 당연히 아담 쪽이 옳겠지만, 그보다 좀 더 복잡한 존재인 인간의 사정으로 보면 살짝 미묘한 지점이 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AI의 등장으로 혜택과 타격을 동시에 받은 업종에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는 예술적인 영역’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은 AI의 눈부신 활약(고전 문학에 심취하며 직접 지은 하이쿠를 낭송하는 아담과 같이)에 겁을 집어먹고 시장에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최소 AI와 공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력이 대체되고 새로 생겨날지는 미지수이지만, AI를 넘어서 초월적 신체 조건까지 갖춘 인조인간과 함께하는 삶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다. 인조인간의 등장으로 인해 끊임없이 인간으로서의 쓸모를 증명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지곤 한다. ‘인본주의의 승리 혹은 그 죽음의 천사 (16)’라는 문장이 피부로 와닿았다.

 


 

그것은 희망이 허락된 종교적 열망, 과학의 성배였다. 우리의 야망은 높고 낮게 흘렀다—창조신화의 실현을 위해서, 기괴한 자기애적 행위를 향해서. 그것이 실현 가능해지자 우리는 결과야 어떻든 욕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가장 고결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목표는 완벽한 자신을 통해 필멸성에서 벗어나 신에게 맞서거나 심지어 신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보다 실용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개선된 형태의 더 현대적인 자신을 고안하여 발명의 기쁨, 지배의 전율을 만끽할 작정이었다.(11)

 

우리 앞에 궁극의 장난감, 모든 시대의 꿈, 인본주의의 승리 ⎯ 혹은 그 죽음의 천사 ⎯ 가 앉아 있었다. 말할 수 없이 흥분되면서도 한편으로 좌절감이 들었다. (16)

 

결국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의식만은 인간이 지구상의 그 어떤 생물체보다 우위에 있다는 우리의 믿음은 아마도 옳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신들에게 대항했던 인간의 정신은 자신의 엄청난 능력을 통해 스스로를 권좌에서 몰아내려 하고 있었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자신보다 조금 더 영리한 기계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다음엔 그 기계가 우리의 이해력 밖에 있는 다른 기계를 만들어낼 터였다. 그럼 우리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129)

 

인조인간은 불완전하고 타락한 우리에게 내려와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무균 공장에서 조립된 손이 더러워져야 했다. 인간의 도덕 차원에서 존재한다는 건 몸과 목소리, 행동양식, 기억과 욕망을 갖고서 현실을 체험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이었다. (140)

 

"우리는 지능이 있고 자기인식이 가능한 기계를 만들어 우리의 불완전한 세상으로 밀어넣었어요. 대체로 합리적 방침에 따르고 남들에게 호의적이도록 고안된 정신이 모순의 회오리에 휘말린 자신을 발견한 거지요. 우리는 그런 모순과 함께 살아왔고, 그 모순의 목록은 끝이 없어요." (273)

 

"나 같은 기계들과 당신 같은 인간들에 대한 시죠. 우리가 함께할 미래…… 우리에게 다가올 슬픔. 그 일은 일어날 거예요. 세월과 함께 개선이 이루어지면…… 우린 당신들을 넘어서고…… 당신들보다 오래 살 거예요…… 당신들을 사랑하면서도요. 내 말을 믿어줘요. 이 시는 승리를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오직 회한뿐이죠."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