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 김원영 / 사계절
💭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사실 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나의 호기심이나 섣부른 질문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싶어 말하기 전에 스스로 검열부터 하게 됐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런 태도 자체가 장애인을 나와 다른 '타자'로 두고 경계를 긋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과정은 그 경계를 허무는 작업과 같았다. 살다보면 누구나 일시적으로든 지속적으로든 '비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순간이 있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장애란 특정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더이상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기 보다는 함께 이야기하고 바꿔나갈 때 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담긴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견해가 인상적이었다. '모두를 위한 설계'라는 말은 굉장히 이상적이고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 보편성이라는 말 뒤에 숨어있는 함정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동안 '배리어 프리'라는 개념이 유니버설 디자인에 자연스럽게 포함된다고 생각했는데, 모두를 포괄하는 설계라는 함정에 빠져 결국 다수인 비장애인의 편의를 기준으로 설계되고 오히려 소수의 장애인을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단지 설계나 기술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어떤 신체를 '보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되묻게 만든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장애인을 위한 설계,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에 깊게 공감했다.
보청기는 영화 속의 세련된 최첨단 기계가 아니라 단지 감추고 싶은 기계였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값비싼 낙인이었다. (p.27)
미래가 아닌 지금 이곳에서 조금 더 잘 살아갈 가능성은 없는 걸까? 치료와 회복만이 유일한 길처럼 제시될 때 장애인들의 더 나은 삶은 끝없이 미래로 유예된다. (p.38)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어떤 시기에는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려난 존재가 된다. 단지 그것 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장애인 사이보그를 이야기하는 것이나 기술과 취약함, 기술과 의존, 기술과 소외를 살피는 것이 결국 모든 이들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다. (p.40)
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들을 향해 왜 입모양이 잘 보이게 말하지 않는지, 왜 그렇게 입을 불분명하게 움직이는지를 지적하는 일은 드물다. ‘올바르게’, ‘목소리로’ 말하라는 요구는 오직 청각장애인들만을 향한다. (p.68)
휠체어를 버리는 것이 꼭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패션이 아니라도 휠체어는 내 존재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집이자, 그 집 안의 친구이자 가족인지도 모른다(그 자체가 나라는 존재일 수도 있다). 의족이 없으면 ‘발가벗은‘ 느낌이 든다는 에이미 멀린스의 그 마음을 휠체어에서 내려온 나도 느꼈을 것이다. (p.177)
보편적 설계의 원칙은 일곱 가지인데 이 중 어디에도 장애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모두를 위한 설계를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배제된 신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라는 원칙이 빠진 것이다. 보편적 설계가 ’보편‘의 범주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정작 보편에서 장애인들의 요구가 탈중심화될 여지가 생긴다. 인류 역사의 보편은 언제나 매우 특정한 신체, 백인- 남성-시스젠더cisgender-이성애자-비장애인-중산층으로 대표되는 중립적 템플릿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p.203)
'독서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고타 크리스토프 -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까치 (0) | 2026.04.04 |
|---|---|
| 임선우- <유령의 마음으로> / 민음사 (1) | 2026.04.03 |
| 손원평 - <튜브> / 창비 (0) | 2026.04.03 |
| 이언 매큐언 - <견딜 수 없는 사랑> / 복복서가 (0) | 2026.04.02 |
| 페터비에리 - <자기결정> / 은행나무 (1) | 2026.04.01 |